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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과학

전파천문학의 시작

by 이루지니 2024.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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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전신전화회사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전화 특허를 산 후 미국 전역을 엮는 통신망을 구축했다. 사업을 확장하며 서부의 뉴저지에 산학합동 연구소인 벨연구소를 세웠다. 이 연구소의 주력인 통신 외에도 순수과학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이 연구소 출신 노벨상 수상자가 13명이나 될 정도로 말이다. 1928년 벨연구소는 미국과 유럽을 이을 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용 요금이 비싼 만큼 돈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이어가기 위해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하지만 대서양을 오가는 전화 통신에서는 끊임없이 잡음이 들렸다. 통신 역시 전파이기에 잡음도 전파다. 원하지 않게 끼어드는 전파들을 찾아내야 통신이 질이 나아질 수 있다고 판단한 회사는 벨연구소 과학자들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게 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과학자들은 이 문제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해결책을 찾기도 쉽지 않고, 찾더라도 큰 업적은 아니라 판단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문제는 막내 연구원인 칼 잰스키에게 돌아갔다. 
잰스키는 커다란 안테나를 만들어 1시간에 세 번 돌아가게 설계한 회전판에 얹어 사방에서 오는 전파를 모았다. 기능은 전파망원경으로 볼 수 있고, 철사를 엮어서 만든 허접한 모양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는 안테나에 잡혀도 알 수가 없기에 잰스키는 안테나에 스피커를 달았다. 스피커에서는 종일 딱딱 또는 쉿쉿거리는 전파 소리가 났다. 그렇게 연구하여 천둥과 번개, 도시에서 나온 전파가 통신의 질을 떨어트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이건 당연한 것이었다. 천둥이나 번개를 치지 않게 할 수도 없었고 도시의 잡음을 없앨 수도 없었다. 이런 가운데 잰스키의 관심을 끈 것은 잡음 중 통신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지만 규칙적으로 들리는 미약한 전파잡음이었다. 물리학을 연구한 과학자인 잰스키는 이 잡음을 더 연구했다. 이 전파잡음은 정확히 23시간 56분 만에 세기가 최고조에 달했고, 매일 같은 방향에서 왔다. 잰스키는 친구를 통해 이것이 항성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항성일이란 별의 기준으로 잰 하루를 뜻한다. 어떤 별이 정확히 남중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재면 23시 56분이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전파를 내는 것이 지구 밖에 있는 것이 확실하기에 이는 놀라운 것이었다. 전파는 우리은하 중심에서 오고 있었다. 우리은하가 전파를 낸다는 것은 우리은하 중심에 강한 자기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은하뿐 아니라 다른 은하들도 전파를 낼 수 있다. 젠스키는 이런 내용의 논문을 1933년에 발표했다. 당시에는 이 논문에 관심을 갖는 이가 없었지만, 이 논문을 통해 전파 과학이 천문학과 결합해 전파천문학이라는 새 분야가 새겼다. 공을 인정받은 잰스키의 이름은 전파의 세기를 재는 단위로 남게 되었다.
전파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 때쯤 제2차 세계대전이 전파 기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전쟁에 필요한 여러 기술을 개발하는 데 전파가 이용되어 많은 돈이 투입되고, 전 세계에 우리가 아는 접시 모양의 전파 안테나가 설치되었다. 이는 전파망원경과 같은 기능을 했다. 전쟁 중에는 지상에서 오가는 전파를 잡아 적을 파악하는 데 사용했지만, 접시를 하늘로 돌리면 우주에서 오는 전파를 잡아낼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버려진 전파 안테나를 전파망원경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사람은 마틴 라일이다. 라일은 개조한 전파망원경으로 우주에서 가시광선은 거의 내지 않고 전파만 내는 천체를 찾아 정리했다. 라일이 전파를 내는 천체를 조사하게 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영국의 날씨였다. 흐린 날이 지속되는 영국 날씨에서는 가시광선을 보는 광학망원경이 별로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전파망원경이라면 가능했다. 날씨와 상관없이 어느 때고 관측을 할 수 있었다. 라일은 '첫 번째 케임브리지 탐사'를 뜻하는 1C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전파 천체 찾기를 시작하였다. 이는 2C, 3C, 4C로 이어졌고 영국은 전파천문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라일은 강한 전파를 내는 천체 50개를 찾았고, 이 중 백조자리에서 찾은 전파원에 시그너스 A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이런 50개의 전파원이 우리은하에 있는 새로운 형태의 별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라일의 의견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정상우주론자 3인 중 한 명인 골드였다. 골드는 그 천체들은 우리은하 밖에 있는 또 다른 은하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케임브리지의 전파천문 연구단의 수장 자리를 놓고 서로 감정이 좋지 않았다. 1951년에 열린 학회에서 라일은 골드의 해석을 반박했다. 두 사람의 사이가 점점 나빠졌다. 이들의 싸움에서 흥미를 느낀 바데는 그런 전파를 내는 전파원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관측천문학자인 바데는 보이는 것만 믿었다. 팔로마산천문대에서 지름 5m의 망원경으로 케임브리지 전파원 목록에서 시그너스 A의 좌표를 찾아 사진을 찍었다. 시그너스 A는 전파를 내기 때문에 가시광선을 보는 팔로마산천문대의 망원경에는 아무것도 찍히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그 전파원의 자리에는 밝은 천체가 있고, 그 주변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희미한 천체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정밀하게 분석한 바데는 시그너스 A를 포함해 그 주변의 천체들이 모두 우리은하 밖에 있는 외부은하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 전파원은 가시광선은 적고 전파를 많이 내는 전파은하였다. 골드의 주장이 맞았다. 바데의 관측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에 라일은 그 전파원들이 우리은하 밖에 있는 전파은하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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