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창하는 우주를 주장했던 과학자들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과학자들의 공격에 그 힘을 잃고 말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영국의 프레드 호일을 필두로 한 과학자들은 우주는 팽창하지 않는다는 정상우주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르메트르의 우주 모형을 싫어했던 호일은 영화를 보며 얻은 영감을 우주 모형으로 만들었다. 이를 정상우주론이라고 하는데, 우주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서 같은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외부은하들이 멀어져 가기 때문에 빈 공간이 늘어난다는 허블의 관측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의 주장과 관측 결과가 맞으려면 빈 공간에서 물질이 생겨야 한다. 1949년 호일은 100억㎤당 1년에 수소 원자 1개가 생기면 현재 우주의 상태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가모브 팀의 우주배경복사에 관한 논문보다 1년 후에 낸 것인데, 이 논문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제일 먼저 수소 원자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데, 이는 질량과 에너지 보존법칙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가모브팀의 '화학원소의 기원'에 대해 대폭발 이전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은 종교에서 말하는 창조라며 싫어했다. 하지만 호일의 정상우주론 역시 비어 가는 공간을 채울 물질이 끝없이 창조되어야 정상 우주가 유지될 수 있기에 그 역시 창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호일은 자신의 주장에 창조의 개념이 들어가 있다는 것조차 러시아 과학자들의 비판을 받고서야 깨달았다. 또 다른 문제는 초기 은하에 관한 것이었다. 커다란 빌딩만 한 공간에 100년에 1개의 수소가 생기고 이것들이 새로운 초기 은하를 만들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게 된다면 초기 은하는 우주 어디에서든 생겨나야 하고 우리 근처에서도 발견되어야 하지만 당시 천문학자들은 이런 초기 은하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호일은 관측이나 실험 결과가 당장은 나오지 않아도 양자역학이 더 발전하면 이런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관측 결과만 기다리지 않고 수소 창조를 위한 창조장이라는 새로운 힘의 장을 만들었다. 이런 생각이 우주가 폭발하여 생겨났다는 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무거운 원소는 별 안에서 만들어진다고 믿었기에, 우주 초기에 무거운 원소를 만드는 대폭발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르메트르의 우주 모형이 진화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었기에 호일은 그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는 진화하는 우주 모형에는 하나의 물리 법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한다는 개념 자체를 싫어했다. 호일은 우주론뿐만 아니라 진화라는 개념 자체를 반대했다. '회오리바람이 쓰레기장을 지나가는 동안 쓰레기들이 저절로 움직여 보잉 747을 만든 것과 같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생물학에서는 진화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호일은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 뿐이었다. 호일의 이런 태도로 인해 관측 증거도 없던 정상우주론이 더욱더 지지받지 못하게 되었다.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가모브의 우주 모형과 호일의 정상 우주 모형이 대립하는 동안 두 사람은 다른 방법으로 경쟁하고 있었다. 모두 대중화를 위해 힘썼는데, 호일은 과학 교양서를 집필하고 라디오에서 대중을 위한 과학 방송을 진행했고, 가모브는 하느님과 호일이 등장하는 '창세기' 패러디와 '이상한 나라 앨리스' 패러디로 입자에 관한 소설을 쓰면서 대중을 위한 과학 강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호일은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가모브의 이론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공을 세우게 된다. 1949년 BBC에서 제작하는 잡지 '리스너'에 실은 글에서 시작되는데, 그 당시 호일은 어렵고 복잡한 우주론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라디오에서 과학 강연을 하고 그런 내용을 '리스너'에 실었다.
"가모브의 이론은 우주의 물질들이 아주 먼 옛날 단 한 번의 '큰 뻥(big bang)'으로 생겼다고 한다..."
큰 뻥 또는 큰 빵, 즉 빅뱅은 학문학적 용어는 아니다. 호일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폭발이라는 뜻의 다른 단어를 제외하고 빅뱅이라는 말을 쓴 것이다. 이듬해에 BBC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호일은 비웃듯이 '빅뱅'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 용어보다는 '빅뱅 이론'이 확실히 머릿속에서 폭발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적절했다. 정상우주론자 호일이 반대의 이론에 멋진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1950년 빅뱅이라는 말이 퍼져나간 후 우주론은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이 되었다.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우주 모형' 보다는 '빅뱅'이라는 이름이 대중들의 언어로 자리 잡은 것이다. 우주론을 이해하지 못해도 사람들은 본 적 없는 블랙홀을 믿고 빅뱅이라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는다. 이름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것이다.
빅뱅우주론과 정상우주론이 접전을 벌이는 것 같았지만 빅뱅우주론에 증거가 또 추가되었다. 이는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 물리학자 발터 바데다. 그는 허블의 관측 결과를 좀 더 큰 망원경으로 확인하다 우주의 크기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허블의 관측이 틀린 것이다. 우주의 크기가 더 커지자 우주의 나이도 늘어나야 했는데, 이는 빅뱅우주론에 유리한 증거였다. 당시 정상우주론자들은 허블상수의 역수인 우주의 나이가 겨우 18억 년이라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 알아낸 지구의 나이가 30억 년이었는데, 지구보다 어린 우주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바데가 허블의 관측은 틀렸고 우주가 훨씬 더 크며 나이가 더 많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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