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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과학

태양의 주성분과 핵융합

by 이루지니 2024.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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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론에 관심을 보인 극소수 과학자들 중 조지 가모브는 젊고 능력 있는 원자핵 물리학자였다. 가모브는 팽창하는 우주에 대한 개념을 프리드만에게 배웠는데, 프리드만이 일찍 세상을 뜨면서 프리드만의 우주론을 계승한 유일한 제자였다. 그는 자기 제자인 앨퍼와 함께 프리드만의 우주론과 핵물리학자의 경험을 합쳐 우주론에 큰 성과를 남기게 된다. 
그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태양의 주성분을 밝혀낸 영국 과학자 세실리아 페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 가득했던 영국은 페인의 대학 입학을 거절했고, 그는 미국 하버드로 유학을 떠났다. 하버드에서 페인은 태양을 구성하는 원소를 알아내고 싶어서 태양의 스펙트럼 사진을 분석하는 데 매진했다. 당시 주기율표에 있는 원소들의 스펙트럼을 다 알고 있었기에 태양의 스펙트럼을 원소의 표준 스펙트럼과 비교하면 태양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토록 간단한 일임에도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과학이란 복잡한 것을 쉽게 설명하는 것이 핵심인데, 결과를 보고 나면 그렇게 쉬운 일을 왜 몰랐을까 하고 안타까워하지만 생각을 먼저 해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고정관념을 지워내야 하는 일이고, 그만큼 지식수준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낙사고라스는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보고 태양에서 떨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불이 붙어 아직 뜨거웠고, 이렇게 뜨거운 열을 내는 것은 태양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분석한 결과 운석은 철로 이루어져 있었고 아낙사고라스는 태양은 운석과 철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에는 이 주장에 대한 실험을 할 수 없었고 아니라고 해도 증거가 없었기에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졌다. 2500년이나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 생각은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원소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철은 빛과 열을 내는 것이 아닌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마리 퀴리가 방사성 원소를 발견한 이래 태양의 에너지가 방사성 원소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제 관측만이 남았다. 1920년대에는 분광 기술이 발달했고, 태양의 스펙트럼 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그 성분을 알아내고 싶어 하는 과학자 세실리아 페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태양이 지구와 가까이 있는 탓에 태양의 스펙트럼 사진에는 엄청나게 많은 바코드 모양의 흡수선이 나왔다. 이미 태양이 철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를 다른 방식으로 보지 못했다. 태양의 흡수선이 철의 흡수선과 너무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철의 흡수선이라 주장하는 것에 반박한 유일한 과학자가 세실리아 페인이었다. 그는 철의 흡수선을 무시하고 모든 편견을 배제한 채 흡수선을 분석했다. 그 결과 철의 흡수선이 우주에서 가장 간단한 원소인 수소와 헬륨의 흡수선과 모양이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 정밀하게 흡수선의 진하기를 측정한 끝에 태양은 수소 90%와 헬륨 10%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양이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다며 다른 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는 거의 수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늘에 떠 있는 뜨거운 태양이 기체 덩어리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보수적인 과학자들은 여성 과학자인 페인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의 천문학계가 여성 천문학자의 연구에서 실수를 잡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유럽에서는 수소가 핵융합을 통해 큰 에너지를 낼 수 있고, 태양은 수소로라는 게 확실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페인이 태양의 주성분이 수소라는 것을 주장할 무렵 독일 괴팅겐에서는 프리츠 후터만스가 영국 과학자 로버트 앳킨슨과 태양이 에너지를 내는 과정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태양이 수소로 이루어져 있고 거기에 헬륨이 약간 포함되어 있다면, 태양의 빛과 열은 수소가 타면서 나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수소 4개가 합쳐지면 헬륨을 만들 수 있고, 헬륨은 수소 다음으로 간단한 원소이기 때문이다. 수소가 타는 과정은 우리가 아는 연소와 달리 산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과학자들은 '핵융합'이라고 표현한다. 수소 1kg이 핵융합을 일으키면 0.9929kg의 헬륨이 만들어진다. 나머지 0.0071kg은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의 공식 'E=mc²'에 의해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바뀐다. 이 공식에 의해 대략 640조J이라는 엄청난 에너지로 바뀌는데, 이것은 지구인이 1년 동안 석유와 석탄을 태워 얻은 에너지의 10배와 맞먹는다. 후터만스는 이렇게 사라진 질량이 태양에너지의 원천일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어떻게 수소 4개가 헬륨으로 변하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는데, 이는 아직 중성자의 존재를 발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양 내부의 온도와 밀도가 수소 핵융합반응이 일어날 만큼 충분한지도 알 수 없었다. 결국 태양의 온도와 밀도가 깊이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는 계산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계산 결과, 태양 속에서는 수소 원자핵이 융합할 수 있을 만큼 크고 온도도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터만스의 계산과 페인의 관측 분석 덕에 태양은 수소로 이루어져 있고 수소가 태양에너지의 원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후터만스는 이 같은 내용을 1929년 독일 물리학 저널에 발표했다. 그는 태양이 어떻게 빛나는지 알게 된 최초의 인간이 된 것이다.
이렇게 페인의 연구 결과가 모두 사실로 드러나자,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던 과학자들은 자신이 페인의 논문 심사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자신들도 태양의 주성분이 수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주장했다. 우리가 아는 과학자의 이미지와 다르지만, 그들도 때로는 비겁하고 거짓말도 하며 틀릴 수 있다.
태양의 수소 핵융합에 대해 연구를 이어가면 후터만스는 1930년대에는 연구를 할 수가 없었다. 공산당원이던 그는 독일에서 탈출해 러시아로 갔지만 소련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감옥에 갇혔고, 1940년 석방된 뒤에도 다시 독일 게슈타포에 체포되었다. 이는 전쟁과 정치가 과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후터만스가 감옥살이하며 연구하지 못할 때 그의 연구를 발전시킨 사람은 한스 베테다. 베테는 어머니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갔다. 당시 유럽 과학자들은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며 전쟁의 위협이 적은 미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러시아 핵물리학자 가모브도 1933년 벨기에에서 열리는 솔베이 회의에 러시아 대표로 참석해 갔다가 다시는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았다. 가모브는 미국으로 가서 조지워싱턴대학에서 핵물리학에 매진했다. 당시 모든 핵물리학자가 원자폭탄을 만드는 계획에 불려 갔지만 러시아 붉은 장교였다는 이력 때문에 핵무기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아무 간섭도 없이 1938년 '별들의 에너지 원천에 관한 문제'라는 학술 대회를 열었다. 핵물리학자, 양자물리학자, 천체물리학자들이 참가했는데, 그중 가장 강한 영향을 받은 사람이 한스 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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