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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과학

우주배경복사의 불규칙성

by 이루지니 2024.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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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배경복사의 발견은 빅뱅우주론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주배경복사의 등방성은 빅뱅우주론의 반증이 되기도 했다. 우주배경복사가 균질하다는 것은 우주의 물질이 고르게 퍼져 있었다는 뜻이고, 그렇게 되면 은하와 별이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물질이 더 모인 곳이 있어야 중력이 세져서 근처에 있는 물질을 끌어모아 은하가 생기고 별도 생긴다. 그러려면 우주 초기에 불규칙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펜지어스와 윌슨이 찾은 우주배경복사는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이 문제를 푸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빅뱅우주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우주배경복사에 불규칙성이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이를 증명할 기술이 없었다. 성능 좋은 장비가 있다면 균일해 보이는 우주배경복사에서 불규칙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질이 많이 모여있는 곳은 중력이 세기에 빛이 빠져나오기 힘들기에 배경복사의 파장이 조금 늘어나 적색 편이를 일으킨다. 물질이 비교적 여유로운 곳은 빛이 빠져나오기 데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력이 센 곳보다 배경복사의 파장이 짧다. 밀리미터 파장을 지닌 우주배경복사는 물질의 밀도 차이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생기는데, 이 차이를 측정할 기술이 부족했다. 
구스와 같은 베이비 붐 세대 과학자인 조지 스무트는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우주배경복사를 찾는 실험에 참여했다. 그는 MIT에서 수학과 입자물리학을 공부했고, 반물질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동료들과 반양성자를 찾기 위해 실험 장치를 만들고, 기구에 달아 하늘에 띄웠다. 하늘에 띄워진 기구는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어서 떨어지며 농가를 덮치기도 하고, 숲에 떨어지면 찾기에 애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반양성자를 찾지 못했다. 동료들은 갖자 흩어졌다. 그럼에도 스무트는 기구를 또 사용해야 했다. 1971년 제임스 피블스가 출판한 '물리적 우주론'을 읽고 우주론에 관심을 가진 그는, 우주배경복사를 정밀하게 관측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헬륨을 채운 기구에 마이크로파 검출기를 달아 하늘로 올려보낸 뒤 우주배경복사를 측정했지만, 이 기구를 착륙시키기에 실패했다. 그 후 U-2 전투기에 마이크로파 검출기를 달아 몇 달 동안 온 우주를 관찰했다. 우주배경복사에 미세한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는지 검사했지만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스무트는 우주배경복사의 아주 작은 불규칙성을 찾으려면 공기가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은 아주 정밀한 마이크로파 검출기를 인공위성에 달아 우주로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나사에서는 익스플로러 위성을 천문학에 이용할 프로젝트를 모집하고 있었다. 1974년 스무트는 우주배경복사를 측정하고 싶다는 연구 계획서를 제출했다. 이런 생각을 스무트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사는 세 팀의 연구 제안서를 하나로 합친 우주배경복사 탐사 위성 '코비'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1986년 1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직후 폭발하면서 승무원 7명이 모두 죽는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코비가 우주로 갈 계획이 취소되고 말았다. 연구 계획서를 낸 지 12년이 지난 후 연구원들은 프랑스의 아리안 로켓에 코비를 실어 우주로 보낼 계획을 했다. 하지만 코비를 완성하도록 지원한 나사는 이를 승낙하지 않았다. 그때 코비 팀은 미국 내에서 델타 로켓을 만드는 맥도넬더글러스사에 로켓 부품이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델타 로켓 기술자들은 델타 로켓이 이대로 사라지느니 코비를 우주로 보내는 데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로써 코비는 우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코비의 몸집이 너무 커 델타 로켓에 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탐사 위성에는 미세적외선 배경복사 실험 장치, 원적외선 분광기, 차별 마이크로파 전파측정기와 같은 고성능 장비들이 있었는데 이를 줄여야만 했다. 기능은 유지하면서 무게를 줄이다 보니 계획을 접는 부분도 생겼다. 나사에 연구 계획서를 보낸 지 15년 만인 1989년 11월 18일, 코비는 델타 로켓에 실려 우주로 날아갔다. 우주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모두 코비가 우주로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가장 감동한 사람은 1948년 우주배경복사를 예견한 앨퍼와 허먼이었다. 코비 팀은 두 사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발사장에 그들 초청해 델타 로켓의 머리 부분에 실린 코비 위성을 만져보는 기회를 주었다.
과학자들의 기대 속에 델타 로켓은 지구 대기를 벗어났고, 코비 위성은 지구의 인성위성이 되었다. 그 후 2년 동안 위성의 마이크로파 검출기는 7000만 번이나 우주배경복사를 측정했다. 1992년 4월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물리학회장에서 코비 팀은 역사적인 그림 두 장을 발표했다. 코비 위성이 2년 동안 우주에서 측정한 마이크로파를 온도에 따라 다른 색으로 나타낸 지도 두 장이었다. 이 지도가 보여주는 것은 우주가 탄생한 지 30만 년일 때 100000분의 1만큼 밀도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주가 균질하지 않다는 말이다. 빅뱅 후 30만 년이 지나는 동안 우주에는 작은 밀도 변화가 생겼고, 밀도가 높은 곳을 더 많은 물질을 끌어들여 은하와 별이 되었다. 우주는 그때부터 은하와 별을 키워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가장 오래된 초기 우주의 구조를 관측했습니다. 은하나 은하단같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구조의 원시 씨앗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신앙이 있다면, 이것은 신의 얼굴을 본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말한 스무트의 인터뷰 내용은 '신의 필체'라는 제목으로 뉴스위크에 실렸다. 이는 빅뱅우주론을 지지하는 중요한 증거였다. 프리드만, 르메트르, 허블, 가모브, 앨퍼와 허먼, 바데, 펜지어스와 윌슨, 구스와 린데, 코비 팀에 이르는 빅뱅우주론자들의 이론과 관측이 보수적인 과학계를 차지하고 있던 변하지 않는 우주라는 개념을 지웠다. 우주론은 빅뱅우주론으로 대세를 이루었다. 코비 팀의 스무트와 존 매더는 이 공로로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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